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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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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6-07 15:45 조회1,1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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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명심(明心)

명심(明心)이란 무엇인가? 밝은 마음 이다. 밝음()은 지혜를 뜻한다. 따라서 명심은 지혜를 지닌 마음이다.

수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암심(暗心)을 버리고 명심(明心)을 얻는데 있다. 그러한 과정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 부르고, 그러한 상태와 경지를 해탈·열반이라 한다. 즉 깨달음이나 지혜의 증득을 의미한다. 암심(暗心)의 반대어가 곧 명심(明心)이다. 암심은 지난 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혜가 없는 어두운 마음이다.

지혜를 불교에서는 반야( 般若)나 명()이라고 한다. 반야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아는 것이고, 비드야는 제법의 존재법칙성을 아는 것이다. 즉 연기의 진리를 아는 것이 명()이다. 그 진리는 의심할 바가 없고 틀림없는 법이다.<대일경소>에서 말하기를, ‘무엇이 밝은 마음(明心)인가? 의심할 것 없는 법에서 의심 없이 닦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틀림없고 의심할 바 없는 법인(法印)의 법에서 그가 듣는 대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밝은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있어서 도()를 장애하는 마음 이 있다. 문득 중혜(中慧)에 처하는 것이 장애를 다스리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즉 중도에 머무는 것이 지혜 있는 마음이고 도에 이르는 삶이다. 중도적인 삶이 암심(暗心)을 버리는 것이며 명심(明心)을 얻는 길이다. 중도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며 양 극단에서 벗어남이다. 다시 말해서 양극단을 섭수하는 것을 뜻한다. 미운 사람, 좋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모두를 받아들이고 거둬들이는 마음이다. 따라서 중도(中道)는 정도(正道)이며 자비심(慈悲心)이다. 즉 이타적인 삶이 중도이며 정도이다.

 

적취심(積聚心)

중생의 좋지 않은 마음 가운데 하나가 고집을 부리는 마음이다. 고집부리는 마음을 적취심(積聚心)이라 한다.<대일경소>에서 이르기를, ‘쌓아 모으는 것을 적취심이라 한다. 무엇을 쌓아 놓는다는 말인가? 무량한 것을 하나라고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즉 자기가 알고 자기가 배운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자기 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고집부리는 것을 아집(我執)이 아주 세다고 하는데, 법에 대해 고집을 부리는 것을 법집(法執)이라 한다. 자기 의견이나 주장이 강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즉 적취심이란 한 가지 법에 빠져 그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화를 하기 곤란하고 소통하기 힘든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적취심을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이 사람은 한 가지 것에 신해(信解)를 일으키고 나서 다시 여러 가지 다른 법을 들을지라도 모두 하나로 해버린다. 또한 삼매 하나를 학습하여 얻고 나서는 다른 경의 가르침과 무량한 법문을 차별한다.’고 하였다. , 오로지 자기가 알고 있는 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떠나서는 다른 법이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마음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와서는 그것이 제일이라 하고, 또 무엇을 듣고 와서는 그것이 최고라고 상()을 내는 것이다. 이는 믿음과 실천이 얕으며 깊지 못한 탓이다. 자기 공부가 더욱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하여 다른 사람과 항상 언쟁을 일삼는다. 싸우는 마음을 투심(鬪心)이라 한다.

 

투심(鬪心)

투심(鬪心)은 싸우는 마음이다. 앞의 경우처럼 적취심(積聚心)이 강하여 다른 사람과 옳고 그름을 논하며 싸우는 마음이 투심이다.<대일경소>에서 투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싸우는 마음이라 하는가? 서로 간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을 성품을 삼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다른 이가 설하는 가르침을 듣고서 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즐겨서 이 뜻은 이러하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말한 다.

투심으로 인하여 말이 많고 시끄러워 항상 공격적이며 자기 우월이 강하여 아상(我相)이 가득하다. 상대의 말이 아무리 이치에 합당할지라도 온갖 억척으로 단점을 드러내고 트집을 잡아 결국 잘못으로 떨어뜨린다. 설령 다른 이가 와서 물을 때에도 그 단점을 지적하여 질문을 어그러뜨린다. 이와 같이 행동한다면 자기에게 투심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투심을 버리기 위하여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비(是非)를 먼저 생각해 서는 안 된다. 경청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며, 존중과 배려는 자비의 또 다른 표현이다. 경청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마음은 이타행(利他行)에서 비롯된다. 이타는 자비를 근()으로 하고, 자비 또한 이타를 바탕으로 한다.

적취심과 투심은 자비심을 길렀을 때 여읠 수 있다. 자비심은 이타행에서 일어나고, 이타행을 통해서 자비심이 더욱 증장된다. 명심(明心)은 불자가 닦아야 할 마음이며, 적취심과 투심은 중생이 버려야 할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