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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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법상인 전수 (스승은 길잡이 보살의 실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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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20 09:32 조회1,7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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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223


總持法藏(총지법장) - 법상인 전수.

 

제목 : 스승은 길잡이 보살의 실천자

 

스승들의 고민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교도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 이는 모든 성직자들이 가지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강조하면서 글씨를 크게 할게요)

 

어느 사원에서 만난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불공이 끝날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는 보살님의 집안 사정은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아들은 술주정이 심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집을 나간 지 꽤 되었습니다. 아들은 돈도 벌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 언어폭력을 넘어서 칼을 빼들고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

? 손자 손녀를 키우기 위해 드는 돈을 벌기 위해 보살님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출부 생활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보살님의 힘으로는 제지를 하기도, 감당을 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식탁 아래나 옷장 안에 숨어 있어도 아들은 기어이 보살님을 찾아내어 밀치락달치락 힘을 써댔기 때문에, 많은 밤을 주택 옥상에 숨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들이 곯아떨어진 게 확인되고 나서야 살금살금 내려와 겨우 새우잠을 청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노쇠한 보살님의 깊은 고민을 어떻게 풀고, 해탈에 접어들게 만들 수 있는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보살님이 불공을 앞두고 있거나 불공을 하고 있으면 아들의 술주정이 훨씬 더 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취한 걸음이 제대로 걷지 못해 넘어지고 자빠져서 진흙범벅이 된 차림으로 들어오면서도 현관문을 걷어차며 나무삿다남!”하고 소리를 빽 지릅니다. 보살님은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고함이라고 여겨졌답니다. 그러면서 보살님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럽고 거친 욕설을 쏟아냅니다. 어느 날, 저는 보살님의 손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혹시 이 모든 상황이 다 보살님이 지어서 온 거라는 것을 알고 계세요?”


보살님은, 모든 업보는 자신이 지어서 오는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슬픈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몇 십 년을 불공해도 나아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또 우셨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오랫동안 불공해도 해탈이 되지 않았다면,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제가 시키는 대로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일단은 그간 하고 있던 조상불공을 모두 중지시켰습니다. 대신 조상 참회를 집중적으로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불공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희사금을 재난소멸과 참회하는 데 보시하고, 마음을 비우도록 노력하라고 말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었습니다.

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칼까지 들고 설치는 일은 없어졌어요.”

그러면 옥상에 가서 숨어 있다가 내려오는 일도 없어졌어요?”

. 이제 옥상까지 가는 일은 없죠.”

날이 추워졌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저는 지금처럼 참회에 집중해서 불공을 하자고 보살님을 격려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아들의 술 먹는 빈도가 줄어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생활비에 보태라며 돈도 좀 주었다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차도가 보이자 보살님은 저의 말에 신뢰를 가지고 열심히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님이 울면서 할 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손녀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데 먹거리도 가져다줄 겸 갔다가 집이 깔끔하지 못해 잔소리를 좀 하였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보살님을 밖으로 떠밀며 난리를 쳤다는 겁니다. 손녀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보살님은 차편도 없어서 밤샘영업을 하는 큰 마트에서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다가 첫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손녀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일까요?”


저는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보살님이 답했습니다.

우리 아들 같네요.”

맞습니다. 아들 참회를 더 합시다.”

그 날부터 보살님은 더욱 더 정성을 다하여 참회에 매진했습니다. 보살님의 진실한 참회가 거듭될수록 집안분위기는 시나브로 바뀌어서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참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참회 하나로 업의 완전한 소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회를 바탕으로 그동안 해오던 안 좋은 습관들을 바꾸고, 또 스스로가 바뀌기 위해 실천을 병행해야 합니다. 말이 쉽지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자식들의 해탈을 위해서는 나 자신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강조하면서 글씨를 크게 할게요-리드문 형태로)

 

업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업의 소멸 역시 쉽게 단박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도 왔다가, 아픔도 왔다가, 시련도 왔다가 하면서 업이 소멸이 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인내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강조합니다. 365일 서원당에 앉아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가 필요하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변화를 체감하게 됩니다. 내면의 혁신 없이 바깥을 향해 원망을 하고 구원을 요청해봤자 텅 빈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강조하면서 글씨를 크게 할게요-리드문 형태로)


업이 두터운 보살님은 참회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고단할 수 있는 반면, 업이 얇은 보살님은 참회의 시간도 짧고 업보의 그림도 빨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의 설법에는 실천이라는 단어가 매번 등장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세뇌 효과가 됩니다. 보살님을 향한 메시지도 되겠지만, 저 자신을 겨냥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보살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스승의 임무, 잘못된 길에 들어선 보살을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것도 스승의 임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승 자신의 실천이 최우선과제가 되어 본인부터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요.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가 업을 적게 짓기 위해서는 늘 노력을 해야 합니다.

?

?행여나 상대에게 업을 짓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은 입에도 담지 말고 생각으로라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스승이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실천을 하고 전파를 하면, 보살들 역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강조하면서 글씨를 크게 할게요-리드문 형태로)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승의 역할은 인도자에 불과합니다. 결정적으로 해탈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보살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

 우리는 실천 방법을 일러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업이라는 것은 혼자 발버둥을 친다고 사라지는 게 결코 아닙니다.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면 달라집니다. 모두 실천을 기억하고 정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