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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스승 링린뽀체의 계보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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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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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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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6-08 14:31 조회 1,0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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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스승 링린뽀체의 계보 ①

달라이라마, 유아부터 혹독한 불교공부와 수행
전담 교수아사리가 함께 전생하는 독특한 인연


그동안 인물사를 엮으면서 인도와 티벳의 아사리들이 전한 전기는 현교를 통해 지견을 갖추고 밀교를 통해 유가와 삼신을 성취한다는 정형화된 실천원리가 내재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현밀겸수를 속없이 말해 왔지만 현밀겸수는 현교와 밀교를 병행해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현교의 수학만을 위해 밀교를 장애를 물리치는 방편으로 간주하는 것도 아니다. 현교의 반야학과 보살행을 공부해 그릇을 이룬 후 밀교에 들어 관정을 받고 불신을 성취하는 연역적 수행차제가 현밀겸수의 바른 이해이다. 성불을 구하는 자가  법신·보신·화신의 성취를 의식적으로 답하지 못하면 그는 불교수행의 목표를 아직 확립하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밀교를 모르면 그는 최소 인도불교에 기반을 둔 불교수행을 지견에 입각해 모르는 것이다. 불교수행의 단계를 ‘도차제(道次第)’라 한다. 인도에서 일어났던 도차제 연구가 한국불교에 절실하기 때문에 그 목마름이 밀교에 대한 관심으로 점차 나타날 것이라 확신한다. 
티벳인들이 나라를 잃고 망명처인 인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티벳 본토의 전통사찰을 세워 티벳의 종교와 문화를 지키는 것이었고, 다음으로 학교를 세워 전통교육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망명정부는 나라를 잃은 어려운 시기에 티벳인들에게 자부심과 용기를 주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심에는 달라이라마 14세 성하가 있으며, 나머지 망명정부의 행정각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사찰의 주지나 법주 등의 고승이었다. 이들은 티벳의 전통적인 현교와 밀교의 혹독한 수행을 거쳤으며  도량이나 법회를 통해 대중을 마주하고, 승려로서 가난과 겸손, 학덕을 제일로 삼는 소탈한 인물들이었다. 티벳사회의 내면을 이해하면 승려들의  티벳인들에 대한 착취나 갈취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달라이라마는 어릴 때부터 혹독한 불교공부와 수행을 거치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그 교육은 과목별로 이름 있는 승려들이 초청되어 개인지도나 사원의 승가교육 형태로 이루어진다. 전담 교수아사리가 있지만 특히 링린뽀체와 티장린뽀체는 달라이라마의 교육을 맡기 위해 함께 전생하는 독특한 인연을 맺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친교사로서 최초 인연이 된 링린뽀체는 1655년 티벳 동부의 캄 지방 낙창지역에서 태어났던 된둡갸초이다. 된둡갸초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법에 대한 수학을 갈망하여 1677년 13살 때 라사에 있는 데뿡고망 사원에 출가하였다. 사미로서 출발하면서 된둡갸초는 논리학과 주요과목들을 외우기 시작하였으며, 매일 20페이지 이상의 텍스트들을 암기했다. 사원의 주요과목은 현관장엄론·중관학·구사학·양평석·율장 등이었다. 그는 제5대 판첸라마인 롭상예셰로부터 비구계를 받고 25세 티벳승려 최고학위에 해당하는 게셰 하람빠를 받았다. 이후 밀교사원인 규메사원에 들어가 중요한 밀교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관정과 구전을 받고 의궤와 성취법을 익혔다.
28세에 데뿡사원의 주지가 되었고, 41세 밀교사원인 규메사원의 주지를 역임하고, 간덴 장쩨사원의 법주에 해당하는 간덴티빠가 되었다. 이때 제6대 달라이라마인 짱양갸초의 친교사가 되었고, 몽골의 라상칸의 스승이 되었다. 제6대 달라이라마와 몽골 사이에 있었던 복잡한 정치외교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일찍이 공부에 탁월했던 된둡갸초는 자신이 원하지 않던 정쟁에 휘말려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라상칸은 자신의 아들을 제5대 달라이라마의 환생으로 내세우려 했으며 된둡갸초는 이에 반대하다 간덴사원의 법주에서 밀려나 자율사원으로 옮겨 교육에만 전념하였다. 여기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후 1727년, 세수 73세에 입적했으며 그의 사리는 티벳 본토 간덴사원의 데셱캉에 사리탑과 함께 봉안되었다. 
1728년 된둡갸초의 환생자로 겐뒨텐뻬곌첸(1728-1790)이라는 아이가 지목되었는데 이로부터 링린뽀체의 계보가 확립되어 입적한 된둡갸초는 초대 링린뽀체, 환생자인 겐뒨텐뻬곌첸는 제2대 링린뽀체로 추앙되었다.  다음 제3대 링린뽀체는 롭상텐뻬곌첸(1791-1810), 제4대 링린뽀체는 아왕룽똑욘뗀갸초(1811-1853)으로 그 뒤를 계승하였고, 제75대 간덴사원의 간덴티빠를 역임하였다. 다음 환생자로 롭상룽똑뗀진틴레(1850-1902)이 제5대 링린뽀체가 되었고, 이후 제6대 링린뽀체인 툽뗀룽똑남곌틴레(1903-1983)이 태어났는데  제97대 간덴사원의 법주가 되었던 이분이야 말로 오늘날 달라이라마 14세를 가르친 스승이었을 뿐 아니라 망명 티벳의 국민들을 위무하고 서구를 비롯한 세계의 불자들을 이끈 20세기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분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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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링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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