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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과 불교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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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3-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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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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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3-07 13:14 조회 1,0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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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과 불교문화유산

불교와 기독교, 그리스 미술이 공통의 기원
기층문화와 결합으로 소박한 형태로 나타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스 문명과 불교의 관계는 매우 가깝습니다. 서양문명의 두 축은 기독교의 헤브라이즘과 그리스-로마 문명의 헬레니즘입니다. 알렉산더제국 이후 오늘날의 중근동 지방은 헬레니즘 세계에 포함되었었고 공용어도 그리스어의 방언인 코이네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약성경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인 코이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야훼를 섬기는 유일신교이고 그리스-로마의 종교는 다신교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그리스-로마 문명에 기반한 신상(神像)들은 우상으로 간주되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유럽의 중세는 기독교 문화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 문명의 고전기(古典期, Classic Age)에 이룩한 예술은 사장(死藏)되고 말았습니다. 중세의 미술은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 불과하였기에 예술 그 자체로서의 의미는 무시되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 이르면 십자군 전쟁과 동방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한편 돈독한 신앙심을 드러내고자 종교미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는 중세와는 다른 형태의 미술을 요구하였고 이에 부응한 예술가들이 잠자고 있던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부활시킨 것이지요. 이 즈음에 이르러서야 미술에 있어서 기독교와 그리스 문명이 완전한 융합에 이르게 됩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은 성서에서 주제를 가져왔지만 표현 양식은 그리스 고전예술의 것이었습니다. 근대 이후의 유럽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뒤섞인 요즈음 말로 하면 퓨전 양식인 셈입니다.

 

한편으로 그리스 문명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동쪽으로도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후로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간다라 지방에서 불교와 그리스 문명이 만나 불상이 비로소 출현하였습니다. 신상(神像) 조각의 전통은 그리스의 것이지만 주제는 부처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두 문명의 융합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인간중심적인 사상체계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되는 불상은 완연히 서구인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서있는 자세도 그리스 미술의 절정기인 고전기에 확립된 콘트라포스토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상(立像)이 일반적이었던 그리스 조각에 비해 명상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징상 좌상(坐商)이 많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그리스 미술과 기독교가 비로소 결합한 것이 르네상스기 이후였다면 간다라 지방에서는 그보다 천여 년이 빠른 기원전후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그리스 문명과 기독교의 관계보다 그리스 문명과 불교의 관계가 더 친연성(親緣性)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기독교와 불교는 교리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만 교리의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은 모두 그리스의 미술을 공통의 기원(起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불교가 동진(東進)하면서 불상도 함께 중국으로 건너왔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점차 몽골리안의 특징을 드러내게 됩니다. 가는 눈과 낮은 코 그리고 둥근 얼굴모습을 한 불상의 모습은 한중일 삼국의 불상의 공통의 모습입니다. 그 완성태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한국에서는 석굴암의 본존불입니다. 나아가 종교는 전파된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기층민의 문화와 결합하면서 소박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삼국시대에 가장 많이 만들어진 불상이 미륵보살상입니다. 구세(救世)의 미래불인 미륵의 하생(下生)으로 이상세계인 용화세계가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땅을 일구는 틈틈이 주변의 돌을 쪼아 미륵불을 조성하였습니다. 투박한 미륵불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이어져 장승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미륵은 민중 속에 들어가 속화(俗化)되어 남녀 한 쌍으로 조성되기도 합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해외여행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중 가장 많이 가는 여행지가 유럽으로 주로 르네상스 이후의 종교적 기념물들을 관람합니다. 유럽의 화려하고 눈부신 유물 유적이 우리의 불교 문화유산과 일부에서나마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구 문명은 자신들이 규정한 동양 문명의 특징을 우리에게 강요하였습니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논리를 우리는 이런 내용을 수용하고 내면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규정한 동양 문명에 대한 내용은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정체성과 타율성에 기반한 논리였습니다. 그 극복의 첫 단추는 불교문화의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외여행으로 얻는 견문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기비하가 아닌 넓은 이해와 깊은 애정으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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