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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밀교에서 삼밀융합의 修法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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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2-04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밀교개론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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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6 17:49 조회 4,7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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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밀교에서 삼밀융합의 修法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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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밀교와 중기밀교의 상이점)

대일경 등 중기밀교경전은 초기의 밀교경전과 대비해보면 몇 개의 특징이 있다.

첫째 초기의 밀교경전은 불설이라 하여 역사적 인물인 석존이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일경, 금강정경에는 교주가 실재 성이 없는 교리적인 성격을 지닌 대일여래로 되어 있는 점이다.

둘째는 여러 가지의 종교의식 또는 주법을 행하는 것은 초기 의 밀교경전에는 제재난 또는 병의 치유를 위한 현세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일경 또는 금강정경에는 의례를 행한다든지 수법( 修法)하는 목적은 현세이익 뿐만 아니라 성불을 위한 것이된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종교적 자각, 자신의 성불을 위하여 수행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순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셋째는 중기밀교 경전에 이르러서는 만다라가 성립하게 된다. 

산발적 이며 조직화되어 있지않던 만다라가 정리되어 대일경을 중심으로 하여 태장계만다라가 성립되었고 금강정경을 중심으로 하여 금강계만다라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형태로서 만다라가 성립된 것도 밀교의 특징 중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다라의 재료는 아주 옛부터 이미 있었지만 이와 같이 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 었던 것이다.

넷째는 진언 · 주 · 다라니 또는 결인 · 인계 · 수지로서 편성하여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손짓등은 대체로 5세 기경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산발적으로 설하여 졌던 것이 결인과 다라니와 정신집중, 이 세가지가 한 모둠이 되어서 신-구-의 삼밀, 즉 몸-입-뜻 이 세 개를 유기적으로 편성하는 방법이 완성되 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는 주문으로 다라니를 염송하는 것 하나만을 행한다든지 혹은 결인 하나만 하는 것 으로, 즉 따로따로 행함으로서 어떻게 정신집중이 될 수 있었겠는가! 정신집중이 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언으로 염송히며 인계를 결하고 정신집중함으로서 성불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수법(修法) 즉 삼밀융합의 수법의 체계 가 중기 밀교경전에서 비로소 설해 지게 되었다.

다섯째는 중기 밀교경전에도 대승불교의 이상 사상적인 것들이 종교의례 속에 짜넣어져 밀교의 의례에 불교적 의미와 사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러한 뜻에서 볼 때 대일경 금강정경은 매우 특징이 있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대일경의 성립 장소가 어느 곳이냐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중인도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지금의 파도나 혹은 나란다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금강정경은 남인도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후기의 인도 밀교)

후기밀교는 8세기 이후에 금강정경이 주체가 되어서 힌두교적 색채를 가미하여 전개되었지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밀교는 실크로드 또는 불교남전의 길을 통하여 중국에 전승되었고 중국에서 한국 일본 등에 전래되었지만 그 밀교는 거의다가 인도 7세기의 중기밀교였다는 것이다. 인도의 후기밀교가 송대, 즉 11세기경에 중국에 들어온 기록은 있지만 별로 확산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이 난 모양이다.

그와 반대로 티벳불교는 인도의 후기밀교가 중심이 되어 번창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7세기경 부터 겨우 문화의 싹이트기 시작한 티벳은 이 때부터 불교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티벳이 불교를 수용한 것은 중국 또는 실크로드 인접국들에 비하여 훨씬 뒤였다. 그때가 인도에서는 밀교의 최전성기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티벳불교에는 처음부터 밀교적인 것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중국  그렇지 않다. 기원전 후 부터 실크로드를 통하여 불교가 들어오게 되는데 대승불교적인 것 부터 전래 되며 밀교는 그 뒤에 전래되었다.

티벳은 국가가 형성된 것도 늦었 며 후기밀교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티벳밀교의 불상을 보면 분노존 또는 남녀의 합체 불상 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이 후기 인도 밀교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은 흔적 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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