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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받고도 께름칙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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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11-18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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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서동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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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5 09:25 조회 4,5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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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받고도 께름칙 해서야
상의가치가 저하된 사회 주고 받음에 진실 담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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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을 비롯하여 천지 만물은 항상 변화한다.전혀 변함 없을 것 같은 바위도 바람과 비의 작용에 의해 서서히 갈라지고 깨져 그 본디의 형체를 잃고 나중에는 갯가의 모래로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것을 일컬어 성주괴공이라 하든가.

다만 인간이 떼를 지어 모여 살고 있는 사회의 변화는 자연의 변화와는 달리 일정한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은 계절이 바뀌는 것 처럼 순환과 반복을 거듭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얼핏 반복하는 듯 하지만 결코 제자리 걸음은 아니다. 하기 좋은 말로 ‘역사는 흐른다’고 하듯 일정한 쪽을 향해 ‘진보’한다. 때 로는 느리게 때로는 ‘혁명적’으로 인간의 사는 방식을 발전시킨다. 그 발전의 동력은 뭐니뭐니 해도 새로운 생산기술의 창출에 있고 그 기술력 은 다시 생산력을 높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변화하게 한다.

이 사회적 관계의 변화야 말로 인간이 인간으로 점차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실현한다. 이를테면 인간을 타고난 신분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 로 정해놓고 한쪽이 한쪽을 완전하게 부려 먹는 계급 사회는 아직 인간이 덜 성숙한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부처님께 서도 바로 이 계급적 질서가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틈틈히 지적하셨다. 아니 틈틈히가 아니라 당신께서 손수 사십년을 중생과 함께 하신 그 자비의 시간은 순전히 낡은 사회 질서를 청산하고 평등과 자유의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자 함 이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누구를 벌하기 보다 따스한 칭찬을 주로 하셨다. 대중이 진리의 말씀을 구하고자 청하면 ‘착하고 착하도다’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상의 종류와 제도가 발달하는 것 역시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계급적 신분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사회에는 상의 제도보다 벌의 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양반이 상놈에게 상을 준다는 것은 하늘의 질서를 어기는 일쯤으로  치부하였듯이 피지배계급에게는 호된 벌로 감히 고개를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어쩌다 정 필요할 때, 이를테면 양반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상놈들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낄 때 마지못해 선심이 라도 쓰는냥 ‘당근’을 주는 적은 있다. 하지만 주로 ‘째찍’을 쓰는 것이 상례였다. 일벌백계라는 말 속에는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현대에 들어 '당근’의 종류와 범위는 대단히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그 만큼 사람들의 문리가 틔인것일까. 좌우지간 그전처럼 신분적 질서에 따라 지배하던 사회적 관계는 아니 다. 일단 형식적으로는 ‘자유인’으로 대접하는 사회가 됐다. 비록 재산의 과다나 학식, 권력 등의 고저에 따라 처우는 다르고 인격적 대접도 달리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간에 많이 성숙한 인간의 사회로 올라섰다. 한발 더 오르면 어느 사회일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는 역사적 성과물이 집적되어 인간의 냄새 를 맡게 하는 사회다. 상의 종류와 제도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거론 하는 '상’ 하면 노벨상일 것이다. 이 상을 받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영광을 얻게 된다. 그만큼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에 있어 국제적으로 권위가 인정되는 상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하는 사람은 미국의 아카데미상을 반드시 받고 싶을 것이다. 프로 야구선수라면 ‘골든글로브’를 안고 싶을 것이고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 가는 문학도는 ‘신춘문학상’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상을 받고도 기분이 께름칙할 경우가 있을까.

나는 최근에 그런 꼴을 보았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9월 초순부터 열 흘 남짓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미를 순방하고 귀국하기 전에 김대통령은 미국에서 ‘제1회 루스벨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게 상을 수여하여 국제 장애인 복지운동을 활성화 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라고 했다, 그 상의 첫 수상자로 한국의 대통령이 선정됐으니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한국의 장애 인이나 많은 국민은 고개를 젓는다.

루스벨트라는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군의 힘으로 종결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국제연합의  창설도 이끌어 낸 사람이다. 그는 어릴적 소아마비를 않은 장애인이지만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따르지 못할 위대한 공로를 세웠다. ‘루스벨트상’은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제정한 상이다. 앞으로 이 상이 어떤 권위를 가질지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수상자의 당사국 국민이 콧방귀를 뀔 정도로 수상자 선정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장래는 뻔하다.

장애인복지만이 아니라 한국의 복지 수준은 우리보다 후진국이라는 나라보다 못하다정부예산 가운데 91 년에는 약10% 정도 차지했던 사회 복지예산이 95년에는 무려 4%로 줄 었다. 이번에 순방한 브라질(91년 19.2%),멕시코(91년 12.3%)에 비해도 월등 적다. 장애인 가운데 15%정도만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으며 공공시설을 비롯 어디를 가도 불편한 곳 투성이 나라가 한국 이다. 그런데 장애인 복지에 공을 세웠다고 상을 줬으니 준 단체나 받은 사람이나 심기가 편했을까. 

혹 미운 놈 떡 하나 더준 것은 아닌지 모르 겠다.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나자 노태우씨는 서울평화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로 사마란치 국제올림 픽위원장에게 줬다. 그 당시 그 상의 제정의도나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던 기억이 새롭다. 결국 한동안 폐지하네 축소하네 하더니 올해는 ‘국경없는 의사회’를 선정하였다. 무릇 상이라는 것이 사회적 발전의 산물이긴 하지만 이렇게 우습고 가벼히 주고 받아서야 어디 당근은 커녕 무뿌리라도 되겠나. 아무튼 상을 받고 더욱 잘하면 그 상의 뜻도 살지 모르니 잘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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