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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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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7-3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총지도량순례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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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총지화 주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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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5 08:33 조회 4,8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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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사
큰행사 도맡는 중심사원 합창단, 음성포교의 선구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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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은 육상교통의 초점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대전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삶의 조건이 좋아 서인지 대전역에 내리자 사람들의 표정은 부드러웠으며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해 대도시인의 특징인 경계심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투리에는 정감이 넘쳐 초행길이라도 조금도 두렵게 하지않는 도시였다. 많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높은 건물이 많아 도시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한밭인의 친절이나 소박한 표정은 산간 사람들 같았다.

이런 고장 대전에 자리잡은 만보사 또한 이 분위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사원이었다. 대전의 명물인 보문산 자락에 자리잡은 만보사로 오르는 길은 세속에 깊게 물든 이라도 금새 선정에 들도록 할 것 같았다. 그 누구가 켜놓은 향에서 나온 향내가 솔내와 섞여 은은하게 흐르고, 보문산의 공기는 더없이 맑으며 산새소리가 정겹게 맞는다. 만보사에서 가장 먼저 맞는 것은 회장 박승자 보살의 희사로 이뤄진「滿寶寺」 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다. 이곳 보살들의 신심만큼이나 단단해 보였으나 표면이 부드러워 만져보고픈 생각도 생기게 했다.

만보사는 기와지붕의 2층건물이다. 총지종단 소속 사원으로는 드물게 머리에 기와를 얹은 것이다. 전통적인 것을 사랑하는 滿寶寺 전수님의 노력이 종단의 반대를 극복한 것이다.

“전통이 없는 현재는 없습니다. 서구화 일색인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 불교사원까지 전통과 무관하다면 우리 후손은 어디에서 역사를 보겠습니까?”

총지종 사원임을 알 수 있게하는 원만무애를 상징하는 구상이 대전을 내려다보며 모든 한밭인의 성불을 기원한다. ‘보배가 가득하다’는 뜻의 만보사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보물을 갖고 있다. 앞마당에 있는 거북이의 입에서는 보 산의 정기를 담은 약수물이 끊임없이 졸졸 흘러나와 교도는 물론 대전 시민에게 청정수를 보시하고 있으며 서원당에서는 대전시내가 한눈에 들 어온다. 

그래서 매일 교도들은 대전시를 굽어본며 무사와 발전을 기원 한다고.

그리고 만보사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전당을 갖고 있다. 머리에 기와를 얹은 2층 건물인데, 2층 서원당에는 몇 백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게끔 되어있으며 1층 강당 또한 여는 예식장 보다 규모가 커 이곳에서는 벌써 14쌍의 부부가 탄생했다고. 또 총 지종의 전국단위 행사는 주로 만보사에서 치뤄진다. 인원수용과 지형상의 조건이 맞아떨어져 그런 것이다.

건물의 크기에 놀라자 총지화 전수님은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이전에 허름한 집에 있을 때는 마음이 꽉찼었는데 집이 커버리자 오히려 물질인 건물이 사람을 압도해 버리는 것같”다며 “이런 큰 건물이 내 원력만으로는 이뤄지기 힘든데 전국의 스승님들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전수닙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서원당에 전국의 모든 스승님의 이름을 걸고 불공하는 것이다.

만보사가 건물만 큰것은 아니다. 사회활동 또한 뒤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노래를 통한 포교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앞서 만보사는 '일찍이 지난 1983년에 만보사합창단을 창단해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연습해왔다. 전통을 자랑하는 합창단은 전국의 불교합창단 가운데 10위안에 들어 각종행사에 초청받아 음성공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방송개국기념 행사에도 불려갔으며 그 실력을 대내외에서 인정받고있다. 또 만보사에 서는 대전 EXPO때 불교전통음식시연회를 개최해 총지종을 세계인에게 알리기도 했다, 이밖에 만보사의 자랑거리는 연등회날의 알찬 행사이다. 고려시대 우리 조상들의 범국민적 잔치날이었던 연등회를 계승해 만보사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면 장기자랑 수여식 제등행렬등 다양한 프 그램의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만보사에서는 전통밀교가 그대로 전해내려오고 있는 티벳의 불교지도자 링린포체와 사츄린포체 초청법회도 개최한 바 있다. 이는 총지 화 전수님의 전통밀교에 대한 관심 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보사가 처음부터 대사원은 아니었다. 지금의 건물이 생긴지는 불과 4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총 기원년 보다 한해 앞서 문을 연 만보사는 지금까지 무려 14번의 이사를 다녔으며 이교도에게 무당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듣는 등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엔 총지화전수님의 노력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창건때부터 오늘날까지 만보사를 지켜온 전수님은 포교에 남다른 원력을 갖고 있다. 교도들에게 보다 좋은 법문을 하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 야 한다는 생각에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의 한국분교에 입학해 4 년동안 대전에서 서울까지 하루도 빠지지않고 다녀 졸업식에서는 노력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수님  설법을 교도들은 교학과 믿음이 겸비해 있다고 입을 모으며 열심히 경청하는 것이다. 

요즘도 전수님은 우리나라에서 밀교서적은 물론 밀 가 발전한 일본의 서적까지 구입해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것이다. 현대 사회에 맞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전수님의 설법을 들은 어느 무기수는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와 신앙상담을 하고 있다. 이 밖애 만보사의 일등공신은 20여년 신정회장직을 맡아오며 물심양면으로 애쓴 박승자보살을 들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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