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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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0-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왕생법문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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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0-15 10:46 조회 145회본문
시간이 가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갑니다.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또한 잠시도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무상 속의 삶, 그러므로 우리는 잘살아야 합니다. 바른 길을 분명히 선택하여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잘살고 있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나’ 스스로와 남에게 속으며 살고 있습니다. 속아 사는 사람은 범부요 못남이며, 잘 살피고 잘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본뜨며 사는 이요, 성현의 길을 걷는 이라 하여도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실로 모든 사람들은 ‘잘살아 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참으로 잘 사는 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그와 같은 결과를 맺게 됩니까? 생각을 뿔뿔이 흩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이들은 스승이나 성현이 설해주는 좋은 말씀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집중을 하고 있으니 잘 알아들을 수 있고, 잘 알아들으니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잘 받아들이니 능히 실천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무량겁의 시간 속에서 보면 우리의 일생은 잠깐입니다. 50세를 사는 이나 80세를 사는 사람이나 잠시임에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이로 봐서 80세를 산 사람이 50세를 산 사람보다 30년을 더 산 것이 되지만 질적으로 볼 때는 꼭 나이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50세에 죽었더라도 즐겁고 의미 있게 산 사람이 있을 것이요, 80세에 죽었더라도 갖은 고초를 겪으며 억지 인생을 산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질적인 삶에 대해 한 차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았으면 그와 같은 삶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으며, 괴롭게 지냈으면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이 두 삶이 어디에서 갈라진 것일까요?
바로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을 모으며 사느냐 흩으며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고락이 갈라집니다. 마음이 들뜬 사람은 항상 겉모습에 급급합니다. ‘이웃 사람이 어떻게 입었으니 나도 그렇게 입고, 어떻게 먹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언제나 겉모습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잘 입고 잘 먹고 고급주택에 살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자녀교육에도 개성과 소질을 살려주기보다는 남처럼 좋은 학력을 갖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며 온갖 열성을 쏟습니다.
과연 이것이 인생의 목표요 사는 보람입니까,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남에게 이끌려 사는 인생이 자기만족은 될지언정 행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상한 시간 속의 짧은 삶을 왜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까? 스스로 진실을 찾고 성실하게 살아도 모자라는 인생인데… 우리는 마음을 모아 생각을 바른쪽으로 몰아가야 합니다. 삿된 생각에 빠져 남 따라 덧없는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 따라 사는 것과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것! 이 둘 다 들뜬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견해인 정견 속에서 바른 생각인 정사를 하며 사는 불제자! 이것만 되어도 그 사람은 행복이 보장되는 높은 경지로 차츰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게 보지 못하고 생각이 들떠 있는 사람, 약하고 삿된 생각과 거북스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차츰 타락되고 불행한 사람 속으로 빠져듭니다. 마음은 요지경과 같습니다. 마음이 들떠서 삿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끝없는 타락의 세계로 흘러내려 갑니다. 반대로 마음을 다잡아 생각을 잘 단속하면 주인 노릇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긍지 속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요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 노릇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주인 노릇을 하겠습니다’하는 다짐을 자꾸자꾸 해야 합니다. 똑똑한 주인 노릇하는 어머니는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딸을 정성을 다해 자식의 소질과 능력을 길러 주며 그 자식은 나가야 할 길을 찾아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되기 때문에 고 3이라 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똑똑한 주인노릇을 하는 남편은 아내 때문에, 아내는 남편 때문에 근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주인이 되어 서로를 보살 피는 좋은 인연의 관계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주인 노릇을 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생각을 잘 다스리면 됩니다. 삿된 생각에 빠지면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고, 바른 생각으로 다져 가면 능히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아가는 순간 순간 마다 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 생각과 마음을 살피고 다지고 또 다져야 합니다.
‘오늘 왜 이와 같은 괴로움을 겪지? 아,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그 욕심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괴로움을 겪게 되었구나. 두 번은 속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원인을 찾고 다짐하여 생활 속의 삿된 생각들을 바른 생각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나’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에 빠지지나 않았는지 항상 돌아보고 살생·투도·사음·망어가 아닌 자비와 복덕과 청정과 진실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면 틀림없이 주인 노릇 하는 ‘나’가 될 수 있습니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네 가지 근본 계율만 잘 지켜 생활의 중심을 이루게 되면 들뜨고 시원찮은 것들이 스스로 가라앉고 저절로 걸러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삶의 저울대가 분명히 있는데 어찌 바른 생각과 삿된 생각을 구별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다행한 사람들입니다. 올바르게 일러주시는 부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장 올바른 길을 일러 주시는 부처님의 제자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받아 지녀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졸렬한 사람이 아니다. 여유로운 도를 닦으며 사는 대장부다. 나는 주인이다. 주인공아, 월등하고 조금도 변함없는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되어다오”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며 주인공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며 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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